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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서와 그와 관련된 행동이 모두 보편적이라고만 보기에는 어렵다. 기본정서의 표현과 인식에 대한 보편성이 있지만, 모든 정서 표현이 보편적이거나 모든 정서가 문화와 관계없이 동일한 방식으로 표현된다고 볼 수는 없다. 비록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동일한 정서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정서 경험에는 문화의 영향력이 존재한다. 정서의 생물학적 기제는 보편적이지만 이 기제는 문화와 상호작용하여 정서의 평가와 표현에 대한 특정 문화의 고유한 규칙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이러한 규칙을 통해 문화적으로 적절한 정서 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



 표정 인식의 문화차. 예를 들면 문화에 따라 더 민감하게 경험되는 정서들이 있다. 미국인들은 분노와 혐오의 결과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며 압도된다고 생각했고, 일본인들은 수치 및 죄책감에 대해 더 민감했다(Matsumoto, Kudoh, Svherer, Wallbott, 1988). Scherer(1997a, b)는 세계를 북중유럽, 지중해권, 북미,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의 6개 권역으로 나누고 각 권역 사람들의 정서 평가를 조사하였다. 그에 따르면, 정서 유발 사건들에 대한 평가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다른 권역의 사람들보다 불공정성, 외적 원인, 지속성을 더 높게 평가하였으며, 남미권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지속성의 지각에서 낮은 점수를 보였다. 이러한 차이는 타인의 표정을 인식하여 정서를 판단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렇게 정서 유발 사건 및 정서에 대한 평가가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점은 정서의 보편성을 가정하는 연구들의 한계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한 문화의 정서를 표현하는 표정은 관찰자가 누구냐에 따라 인식률에 차이를 보인다. 미국인들의 얼굴 사진을 제시했을 때 영어권 국가의 참가자들이 보인 정서 인식률이 인도-유럽권 언어 사용자(예, 스웨덴, 그리스, 스페인)들보다 높았으며, 인도-유럽권 참가자(예, 일본, 터키, 말레이시아)들은 비인도 유럽권 참가자들 보다 높았다. 또한 이들의 인식률은 문자가 없는 문화권의 참가자(예, 뉴기니의 일부 종족)들보다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Russell, 1994). 또한 보편적 정서들에 비해 모욕, 부끄러움, 연민과 같이 덜 기본적인 정서들의 인식률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Haidt & Keltner, 1999). 정서의 표현과 인식에 문화와 사회적 맥락이 중요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정서표현에서의 문화차. 문화는 해당 문화에서 선호하는 가치와 관련하여 특정 정서의 표현을 억제하거나 권장하는데, 이것을 문화 표출 규칙(cultural display rule)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Ekman & Friesen, 1969). 가령 뉴기니의 Kaluli족은 강하고 극적으로 정서를 표현하는 반면, 발리인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강한 감정 표현을 피한다. 중국의 유아들은 미국이나 일본에 사는 비슷한 월령의 유아들보다 정서 표현의 정도가 약하다(Camras et al., 1998). 개별적인 정서 표현의 강도에서의 문화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Utky Eskimo족은 공공장소에서 화를 내는 것을 강하게 비난하며, 아랍의 유목민족들은 모욕을 당하고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은 대단히 불명예스러운 일로 간주한다. 미국인들은 당황했을 때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내리깔며 얼굴을 만지는 등의 많은 표현을 하는 반면, 인도인들은 혀를 조금 깨무는 것으로 그친다(Haidt & Keltner, 1999).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고통을 더 강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병원에 입원한 이탈리아계 환자들과 아일랜드계 환자들을 비교했을 때, 이탈리아계 환자들이 고통을 더 많이, 더 큰 소리로 표현하는 것을 나타났다. 이러한 지중해 환자들의 경향은 미국 병원의 간호사들 사이에서 AMS(Acute Mediterranean Syndrom:급성 지중해인 증후군)라는 농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양한 정서의 표현은 기본정서를 경험하는 상황이 아니라 복잡한 문화적 맥락이 개입하는 경우에 주로 나타난다. 이것은 적어도 기본정서가 아닌 문화적 정서의 경우에는 정서의 경험과 표현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 정서의 보편성에 대한 논의들은 각각 정서의 생물학적 기원과 사회문화적 기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정서는 이들 두 기제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으로, 어느 한 쪽의 입장으로 정서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Mesquita & Frijda, 1992). 정서란 개인이 부딪치는 상황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유발되는 것으로, 이러한 평가 차원 중에는 보편적인 것도 있고 문화 특수적인 것도 있기 때문이다. 분명 여러 문화 사이에는 유사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유사점은 대체로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의 보편성에서 연유하며, 차이점은 환경의 차이와 거기에 기인한 삶의 양식에 대한 서로 다른 의미 체계, 곧 문화에서 유래하는 것이다(Ellsworth, 1994). 정서가 개인을 둘러싼 상황 평가의 결과라면 이는 생물학적 특성보다는 상황에 대한 의미체계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문화적으로 조건화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정서는 해당 문화의 도덕적 규범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White, 1993). 따라서 현재로서 보편주의와 구성주의적 관점은 상호배타적이 아닌 상호 보완적인 접근으로 보는 것이 최선이고 이러한 입장은 대단히 광범위하게 인정받고 있다(Russell,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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