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의 구성과 해석. 과거 심리학에서 정서는 문화에 관계없이 보편적인 것이라 여겨져 왔다. 기쁨, 슬픔, 분노, 공포 등의 정서는 발생적인 측면에서 생물학적인 기원을 갖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는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비교문화심리학의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면서 문화에 따라 개인이 경험하는 정서의 질이 다를 수 있다(Markus &Kitayama, 1991a)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또한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서가 문화 보편적이라는 기존의 관점은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 물론 정서가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말은 정서의 생물학적인 과정이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Russel, 1991). 어떠한 정서가 발현되는 생물학적인 과정은 문화를 떠나서 보편적일 수밖에 없다. 대신에 정서에 대한 해석은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Mesquita & Walker, 2003). 즉, 정서가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말은 어떠한 정서에 대한 해석과 설명이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말은 어떠한 정서에 대한 해석과 설명이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어떠한 정서가 한 문화에서 독특하게 경험되는 성질의 것이라면, 그것의 배경이 되는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견해와 연구 결과들은 문화가 해석의 체계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며, 그동안 보편적인 것이라 생각된 정서 역시도 문화와 독립적으로는 고려하기 힘들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Schachter와 Sinher(1962) 그리고 Lazarus(1968)가 제안한 정서에 대한 인지이론에 따르면, 정서는 생리적 반응뿐 아니라 개인이 처해있는 상황과 그 상항에 대한 개인의 해석과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 즉, 정서에 대한 해석과 정서적 경험은 환경과의 계속적인 상호작용으로 생성된다는 것이다. 이때 어떤 정서를 유발한 상황과 생리적 반응에 대한 해석에는 언어의 역할이 지대하다. 정서는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또 인지되는데 어떤 문화에서 어떤 정서에 대한 특정한 용어가 있다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그 정서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Wierzbicka, 1995). 예를 들어, 정과 sympathy(동정, 공감)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그 정서적 경험의 내용이 같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이라는 정서는 우리 성과 같은 문화적 정서 체계 속에서 경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정과 sympathy를 비교한다면 이러한 정서적 경험의 체계에 비추어서 고찰해야 한다.
언어와 정서 경험. 정서의 경험이 언어적 해석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면, 정서를 표현하는 단어의 다양성은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정서의 질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에는 2,000개가 넘는 정서 표현 단어들이 있으나, 말레이시아의 Chewong족은 겨우 8개의 정서 단어(분노, 공포, 부끄러움 등 Ekman의 기본정서와 유사)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Heine, 2008). 또한 문화는 정서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우간다의 Bugand족은 슬픔과 분노를 구분하지 않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Gidjingali aborigine족은 한 단어로 부끄러움과 공포를 표현한다. 사모아 단어 alofa는 사랑과 연민이라는 뜻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Utku Eskimo는 친절함과 감사를 구분하지 않는다. 미크로네시아의 Ifaluk족은 심지어 '정서'에 해당하는 말 자체가 없다. 이들의 정서 경험이 우리와 같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한 문화의 정서를 표현하는 단어들이 다른 문화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그 같은 정서를 전혀 경험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상이한 문화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심리적 경험을 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독일어의 Schadenfreude(다른 사람의 불행에서 느끼는 즐거움)라는 단어가 있다는 사실은 독일인들에게는 그러한 감정 상태나 상황을 확인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다른 문화 사람들에 비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한은 한국만의 고유한 정서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한자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에도 한에 대한 정서 경험이 존재하고, 서구 문화권에서도 이와 유사한 질의 경험은 있을 것이다. 한이 한국의 문화적 정서라는 진술은 한국인들이 한이라는 용어를 통해 자신의 심리적 경험을 구성하며, 한을 경험하고 표상하는 방식이 한국인들과 한국 문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다른 심리적 경험을 구성하는데 어떠한 기능 혹은 역할을 맡고 있다는 뜻이다. 즉,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 한과 유사한 어떤 정서는 한국인들이 '한'으로 표상하고 인식하고 있는 정서와는 질적으로 다르게 받아들여지며, 사람들의 동기 및 행동 체계에 미치는 영향 또한 다를 수 있다.
토착 정서들의 예. 특정 문화의 언어로 표현된 정서는 그 문화 내에서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는 몇 가지의 토착 정서들을 소개한다. 먼저 Liget은 필리핀 북부에 사는 수렵, 채집 민족 Ilongot족의 토착 정서로, 그 뜻을 최대한 가깝게 옮기면 분노, 열정과 에너지가 합쳐진 정서를 의미한다. Liget은 어떤 사람이 모욕당하거나, 화가 났을 때, 실망했을 때, 특히 누군가가 부러울 때 경험할 수 있다. Liget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경험되는데, 특히 누군가와 경쟁하고 상대의 성취를 부러워하는 맥락에서 비롯된다. Liget은 또한 에너지의 원천이기도 하다. Liget을 느끼는 사람은 밭에서 하루 종일이라도 일할 수 있으며, 평소에는 못 올랐던 높은 나무도 오를 수 있다. Schadenfreude는 독일어로, 다른 사람에게 생긴 곤란한 일을 보았을 때 경험하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우리말로 '쌤통'이 연상되는 이 말의 뜻을 적절히 옮길 만한 영어 단어는 없다. Iklas는 자바어(인도네시아)로, 좌절의 기쁨쯤으로 옮길 수 있는 정서이다. Song은 이팔루크어(미크로네시아 원주민 언어)어로, 공포, 두려움, 불안, 겁 많음, 수치 등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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